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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소개

갤러리 압생트에서는 2014년 9월 3일(수)부터 9월 24일(수) 까지 런던에서 활동하며 국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김하영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 <캐릭터 없는 캐릭터들 Characterless Characters>를 개최합니다.
김하영 작가는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였으며, 현재까지 영국에서 개인전 3회 및 그룹전 11회를 가지며 기반을 다졌습니다. 한국에서는2013년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에 참가하고, 갤러리 현대 윈도우 갤러리 전시회에서 작업이 소개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서울시립미술관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프로그램에 선정되어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이번 전시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전시회는 작가가 그 동안 해왔던 작업들의 다양한 면들을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김하영 작가는 현대인이 고도로 테크놀로지화된 사회 안에서 일정 부분의 인간성과 개인성을 잃고 어떻게 ‘캐릭터 없는 캐릭터’같이 되어가는 지 관찰하고 그것을 유머러스하고 아이러니하게 이미지화 시키는 작업을 하곤 합니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가상현실의 창과 현실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풍경을 표현하기도 하고, 근래에 많이 본 인터넷 뉴스 이미지와 판타지컬한 이미지를 결합시켜 다른 차원의 공간과 실제 공간의 경계의 모호함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디지털 코드 이미지, 성형광고에서 보는 절단된 인간의 신체, 기계용품들을 함께 음식처럼 그릇에 배치해 놓음으로써 그것을 우리가 날마다 먹는 양식으로 비유해 놓은 작품 등 이번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은 다양한 스토리 라인으로 평소 꾸준히 해왔던 드라프팅 필름 작업과 폴리에스테르 캔버스 작업을 보여드립니다.
초점을 잃고 사물화된 인간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판타지컬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김하영작가의 2014년 국내 개인전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작가노트

인간의 모습을 한 캐릭터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언캐니(uncanny)한 느낌과, 현대의 추세로 나아가고 있는 사물화된 인간의 상태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과학과 사고는 이제 인간이 기술 회사라는 주체의 수동적 객체가 되어 버리는, 여느 때보다도 더 인류를 사물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대시켜주거나 편의성을 높여준다는 점에 있어서 이미 ‘팔린’ 기술이지만, 그 반대 역시 사실이다. 우리를 위하여 기술을 사용하는 순간, 인간의 효율성은 위축된다. 우리 뇌의 일부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무감각해진다. 우리는 편리한 삶을 가능케 하는 여러 기술 제품들에 둘러싸여 있다. 오래전 마샬 맥루한이 말한 것처럼, 현대 인간은 뇌를 두개골 밖으로 걸치고 있으며, 신경을 피부 밖으로까지 드러내 보이고 있다. 우리가 기술에 의존할수록 기술은 더 큰 힘을 가지게 된다.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개인은 빠른 기술의 급류에 쓸려가는 작은 입자처럼 되어 버린다. 인간은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외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믿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내부까지 변화시켜 조건을 개선하고자 한다. 완성된 인간 지도 (게놈 프로젝트)로 인간은 자신의 사고와 감정까지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전지전능한 과학의 힘으로 인간은 ‘주어진’ 조건을 ‘만들어진’ 조건에서 더 나아가 신화적으로 완벽한 상태인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 인간의 신체는 오래된 부분을 새 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자동차처럼 되어 버리고, 인간의 유전자 코드는 재프로그래밍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과연 우리의 내부와 정신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 작품에 수동적인 인간의 형상들 또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현대 기술과 과학이 인간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게임 세계에 사는 것처럼, 오늘날의 첨단 기술 사회 속에서 인간성과 개별성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특징 없는 인격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지배적이고 차가우며 이성적이고 ‘지능적인’ 논리는 우리가 물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느끼게 하며, 나아가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 모두는 간과하고 있다. 현대적 개인의 사고 형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김하영의 현대회화: 일상의 이면, 회화의 이면

1.
김하영은 작업의 소재를 일상에서 가져온다. 그는 일상에서 마주한 희한하고 이상한 것에 관심을 갖는데, 특히 사람을 닮은 캐릭터와 현대과학기술에 의해 변화된 사람의 모습을 주목한다. 예를 들자면 그는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플라스틱 가방을 우연히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가방이 구겨져 있어 마치 미키마우스가 인상을 쓰는 듯 했으며, 심지어 그 모습이 악마스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보통 우리는 미키마우스를 선량한 친구로 여기지만, 상황에 따라 이 캐릭터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작가는 어느 날 주름 제거를 위해 얼굴을 당긴 할머니를 TV에서 보았는데, 웃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오히려 불길하고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고 한다. 이 순간 두 개의 전혀 다른 상황의 이미지가 서로 겹쳐져서 인식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업이 < Plastic Facial Expression> 이다. 이처럼 그는 친근한 모습 뒤에 감춰진 낯선 모습 혹은 양면적이거나 특이한 것을 사진 찍거나 스케치하여 작업의 소재로 활용한다.
이후 그는 수집한 이미지의 핵심과 본질만 남겨 둔 채, 이미지의 세부 형태와 색채를 생략하거나 단순화시킨다. 사실 이런 과정은 추상화(抽象化)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김하영은 말한다.

“저는 작업의 결과물이 추상의 영역에 있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봤을 때 이것이 어떤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닌 것 같은. 책을 그렸지만 책이 아닌, 얼굴을 그렸지만 얼굴이 아닌, 그런 중간 어느 지점에 있는 듯한 효과와 분위기를 내고 싶어요. <Public Feelings>에는 눈(eye)같은 이미지가 여러 개 등장해요. 이것을 눈으로 생각한다면 매우 끔찍하고 섬뜩하죠. 반복되어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이것을 패턴으로 인식한다면 그냥 데코레이션이고 그때부턴 예쁜 이미지가 되겠죠. 제가 눈을 정말 눈 같이 그리면 그 이외의 것은 없어요.” -작가 코멘트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이미지의 출처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굳이 그 출처를 알 필요는 없다. 이렇게 간략화•추상화되면서 이미지는 일종의 코드가 되고, 작가는 종종 이 코드를 반복적으로 화면에 배치한다. 그러면서 이 코드는 더 이상 실재대상과 관계없는, 레퍼런스가 없는 기호(sign) 같은 것이 된다.

2.
김하영은 자신의 독특한 이미지를 독특한 방법에 따라 독특한 지지체에 위치시킨다. 영국 유학 중 그는 동양에서 와서 그래픽적 언어를 쓰는데 왜 그것을 서구의 전통이 가득한 일반 캔버스에 그리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수백년동안 수많은 작가들이 사용한 캔버스에는 젊은 동양인이 무턱대로 아무 이유없이 지지체로 사용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히스토리와 레퍼런스가 겹겹이 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무게가 마치 서구의 위대한 마스터들의 유령이 붙어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고전적 페인팅의 대안을 모색하던 그는 2010년 가을 어느 옷 가게 쇼 윈도우에 걸린 커다란 필름을 보게 된다. 그 필름에는 연필로 드로잉이 그려져 있었고 프로젝션을 통해 영상 이미지도 함께 비춰지고 있었다. 공중에 매달린 필름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고, 그는 곧바로 옷가게에 들어가 점원에게 필름에 대해 문의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드라프팅 필름’이라는 지지체이다. 그는 드라프팅 필름을 이용한 작업을 ‘스크린 회화(screen painting)’라고 부른다. 우리가 날마다 조우하는 컴퓨터, 스마트폰과 광고 스크린들에서 레퍼런스를 따왔다.
드라프팅 필름은 과거 전통 셀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필름이다. 재질은 투명한데 꼼꼼히 보면 한쪽 면은 매끄럽고 부드러운 반면 다른 쪽은 다소 꺼칠꺼칠하다. 그는 이 꺼칠꺼칠한 면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후 필름을 뒤집어 전시한다. 관객은 물감이 칠해진 필름 뒷면, 즉 매끄럽고 윤이 나는 면을 보게 된다.
전시장에서 페인팅을 감상할 때 관객 중 일부는 얼굴을 그림에 가까이 대고 미묘하고 섬세한 물감의 재질감(Matière)을 느끼고자 한다. 하지만 김하영의 그림에서는 소용없는 일이다. 관객은 물감이 칠해진 필름의 뒷면을 보기 때문에 물감의 부피나 두께를 제대로 감지할 수 없다. 단지 투명한 필름 위에는 물감(색채)이 평평하게 있을 뿐. 관객은 오로지 평면적 이미지를 접하는데, 이는 우리가 컴퓨터 스크린에서 보는 부피와 두께가 없는 (평평한)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의 회화에 물감의 재질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뒷면에는 물감의 질감이 존재한다. 다만 관람자의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형식주의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회화의 본질인 색채와 평면성이 그 누구보다도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액자 없이 필름을 벽에 고정시킨다. 벽의 평면성이 필름의 평면성과 자연스럽게 접속된다.
김하영은 이렇게 제작한 필름을 2-3장 겹쳐서 전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필름이 중첩되면서 일종의 레이어가 생기고, 그 결과 저절로 물리적 깊이가 발생한다. 이것은 평평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모순적 입체감이다. 또한 각기 다른 필름에 그려진 형상들이 만나면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는 스크린 페인팅을 2011년 6월 대학원 졸업전시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이어서 그는 ‘폴리에스테르 천’을 찾아낸다. 일반적으로 영국에서 캔버스를 만들 때, 작품의 보존을 위해 프레임에 폴리에스테르 천을 싼 다음에 면천을 덮는다. 한국에선 폴리에스테르 천을 넣지 않는다고 한다. 반투명한 폴리에스테르 천은 빛이 투과되는 성질을 가진다. 그리고 약한 회색을 띠고 있어 색을 칠하면 발광 효과가 두드러지고, 아크릴 물감이 폴리에스테르 천에 스며들지 않고 표면에 안착된다고 한다. 더불어 아크릴 에스테르 수지로 만들어지는 아크릴 물감이 면(cotton) 보다는 인공합성물인 폴리에스테르와 더 가까운 물질이 아닐까. 그는 프레임에 면천 대신 폴리에스테르 천을 붙인다. 작가는 이것을 ‘폴리에스테르 캔버스’라고 지칭한다.
김하영은 이와 같이 크게 두 가지의 지지체를 사용하는데, 각 지지체마다 다루는 이미지가 조금 다르다.

“폴리에스테르 캔버스에 작업을 할 땐 초상화를 그린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요. 드라프팅 필름을 작업할 땐 이벤트 혹은 풍경(scenery)을 묘사한다는 생각을 하고요. 접근 방식 자체도 다른데요, 필름을 대할 때는 이것이 커다란 스크린이라고 여기고 뭔가 활발하게 거대한 이벤트가 일어나는 장소라고 생각해요. 캔버스 작업은 제가 앉아서 호흡도 차분하게 하고 정적으로 진행해요.” -작가 코멘트

비교적 규모가 작은 폴리에스테르 작업에서는 사람인지 사이보그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사람인데 사람 같지 않은 기묘한 형태이거나 사물인데 사람 같은 기이한 형상이 나타난다. 또한 신체의 특정 부위를 강조한 이미지도 나오는데, 이는 그가 성형광고에서 봤던 신체와 기관이다.
비교적 규모가 큰 드라프팅 필름 작업에서는 어떤 이벤트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Public Feelings>를 예로 설명해 보면, 최근 많은 사람들은 SNS에 좋은 이야기건 그렇지 않은 이야기건 서슴없이 글을 써서 올린다. 일전에 어떤 사람이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그 과정을 상세히 써서 SNS에 올렸다고 한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며 사적인 감정이지만 SNS에 올리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게 된다. <Public Feelings>에는 눈과 불기둥 같은 형상이 있는데, 눈은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며 불기둥은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분노이다. 그런데 그 글에 달린 댓글을 보면 ‘힘 내’, ‘괜찮을 거야’ 등 격려하는 글이 많아서,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이 갑자기 훈훈해지고 아름다워지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불기둥마저 아름답게 표현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3.
김하영 그림에 있는 형상들은 대부분 윤곽선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 윤곽선을 경계로 채색을 한다. 그렇다 보니 그의 그림에는 선적인 요소가 돋보인다. 김하영 세대의 작가들이 그림과 가까워지고 페인터의 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 이들 세대에게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친숙한 매체이다. 이들은 크게 부담 없이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종이에 선을 긋는다. 또 형상을 단순화시키거나 생략시키는 것에도 익숙하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이들은 드로잉이란 매체를 선호하며, 심지어 회화에서도 선(線)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대중적 소재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지만, 사물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김하영의 그림에서 ‘draw’의 흔적이 보이는데, 동시에 ‘paint’의 흔적도 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은 선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면(面)적인 요소도 있다. 그 면은 풍부한 색채를 가지며, 그 색면을 자세히 보면 붓으로 물감을 칠한 흔적, 즉 ‘붓질(brushwork)’이 드러나면서 회화적 요소(그리는 행위와 물감)가 충분히 살아나고 있다. ‘Draw’와 ‘paint’의 요소가 절묘하게 혼합된 그의 그림은 만화적이면서도 회화적이다.
한편 2011년 여름 대학원을 졸업한 후, 2개월 동안 뉴욕에 체류했던 김하영은 어느 날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주디 시카고(Judy Chicago)의 <The Dinner Party>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식탁에 놓인 접시에는 다양한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고, 그 중에는 여성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재현된 접시도 있었다. 접시 옆에는 포크와 나이프가 있어 성기가 음식처럼 보인다. 여성의 연약한 부분이 아무런 힘없이 수동적으로 노출된 상태이다.

“친구가 채식주의자인데요. 그가 ‘네가 먹는 것이 너다(You are what you eat)’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이 맞는 거예요. 제가 육식을 하면 그 음식이 나의 일부가 되어 내게 영향을 끼치고, 채식을 하면 다른 식으로 영향을 주고. 음식을 수동적으로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것 같아요. 왜냐면 나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니까요. 제가 봤던 이미지들은 그냥 여기저기서 수동적으로 있었던 것들이지만, 그것들이 무의식적으로 제게 들어와 좋던 싫던 제가 나중에 무슨 말을 하거나 결정할 때, 저의 일부분이 되어서 표현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그 이미지들도 능동적이고 활동적인 거죠.” -작가 코멘트

2012년 초 한국에 잠시 들어왔던 김하영은 지하철역에서 봤던 성형외과 광고와 그 옆에 나란히 있었던 레스토랑 광고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성형광고의 모델은 마치 사이보그 같아 불편했고, 밝고 화사한 음식은 예쁘게 제시된 여성 같았다고 한다. 한 장소에 어색하게 병치된 이 모습이 매우 우스꽝스러웠던 모양이다.
이런 에피소드로부터 만들어진 것이 ‘접시 회화(dish painting)’이다. 그는 인터넷에 떠다니는 신체, 사물화된 사람, 아이콘, 이모티콘 등을 음식처럼 접시에 배치하였다. 마치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처럼. 그릇에 담긴 이미지는 우리에게 먹힐 준비가 된 듯 수동적이고 공격적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이미지가 우리 몸에 소화되어 신체의 일부가 된다면 언젠가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무수히 많은 이미지가 결국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4.
우리는 현재 첨단기술사회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디지털혁명에 힘입어 인류는 어떤 때보다 편리하고 풍족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첨단기술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때론 과도한 기술로 인해 인간은 첨단기술에 종속되면서 개성과 인간성을 상실한 채 획일화•사물화되고 있다.

“이제 사람은 디바이스와 연결되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사물과 인간이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인간이 사물을 닮아가고 사물이 인간을 닮아가는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인간성이 사라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Characterless Characters’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죠. 캐릭터인데 왜 캐릭터가 없는지, 하지만 지금 그런 것 같아요. 게임 안에 사는 캐릭터들처럼 우리 인간이 시스템에서 사는데, 사실은 그 안에서 유령처럼 공허하게 영혼 없이 사는 게 아닐까요.” -작가 코멘트


그의 그림은 밝고 경쾌하다. 그런 화려한 색채는 화려한 첨단기술 문명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어둡고 끔직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 게다가 절단되거나 파편화된 형상들은 어딘가 정착하기 못하고 둥둥 떠다니고 있으며, 심지어 인간이 아닌 사이보그나 기계를 떠오르게 한다. 그 형상들은 어떤 깊이 있는 관계보다는 가볍고 얄팍한 관계에 매몰된 인간을 암시하는 기호 같아 보인다. 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한 현대인의 씁쓸한 뒷모습이기도 하다.
김하영은 현대사회를 소재로 한다. 그는 현대적 소재를 현대적 회화의 방법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그의 그림에는 구상/추상, 선/색면, 인간/기계, 평평함/깊이, 친근함/섬뜩함 등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는데, 그는 그것과 어울리는 새로운 회화적 기법, 재료, 제작방식, 설치방식을 종합적으로 고려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그림은 회화의 현대적 확장이며, 동시에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 류한승(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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