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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예-‘존재하는 존재하지 않는’ 그것. 두려움이 만들어 내는 ‘괴물’ 들

어릴 때 나는 공포영화를 전혀 볼 수 없었다.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리고도 들려오는 소리들에 그만 볼륨을 낮추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달음질쳐 어딘가로 도망질을 치기까지 할 만큼 겁이 많은 아이였더랬다.
차츰 나이를 먹어가며, 무언가 실험적인 마음에 꽤나 유명한 공포영화 시리즈를 틀어놓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응시하고 있었을 때, 외려 당혹스러움에 놀라고 말았던 것은 영화가 결코 내가 간혹 꾸곤 하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악몽보다도 덜 무섭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포라는 것은 결코 나의 머리와 마음속의 “상상”만큼의 두려움도 재현해 낼 수 없던 것이었다.
실제의 삶속에서 나를 위협하고, 나를 불안케 하는 두려움의 근원은 대부분 나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곤 한다. 결국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 두려움의 가장 커다란 실체는 나 자신이 만들어 가고, 마주치는 나 자신임을 깨달아 간다.

나의 작업들은 나의 내부와 외부 속에 존재하는 각각의 “나”들이 서로를 만나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들이 다름의 모순을 의식하며, 그 공생의 방법을 모색하고, 그에 있어 “깨어있음” 이라는 각성의 상황으로써 뒤숭숭한 불안과 불만의 삶을 극복하려는 노력들이다. 작가 본인은 스스로 이것을 “나의 작업은 이 괴물들이 서로 맞닥뜨리는 전쟁터” 라 부르곤 한다. 거울 밖의 내가 거울속의 내가 들어 올리는 것과 다른 방향의 팔을 들어 올리듯이 모순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해낸다. 또한 거울속의 나는 거울 밖의 내가 실제의 삶속에서 지니고 있는 또 다른 기준과 욕망을 알아채고 만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서로로부터 달음질쳐 도망갈 수 없는 하나의 존재로 공존함을 피차간에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극단의 두려움을 자아낸다. 서로간의 모순을 지닌 그들이 만나 일그러지고, 흔들리며, 불안을 뚝뚝 떨구어 내는 불안정의 순간을 그려내고자 한다. 그것은 나의 “극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한 공존의 순간에 쏟아지는 두려움과 부정의 뒤숭숭함과 불안을 나는 “깨어있음”으로써 받아들이고자 한다. 나의 모순과 불완전, 그리고 불안전을 받아들임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혹자는 이러한 나의 작업의 형상들을 ‘이중 자아상’ 이라 부르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 가는 두려움과 나 스스로의 불완전이 나를 묶어두기를 원치 않는다. 내 밖의 괴물과 내 안의 괴물이 서로를 만나 충돌하는 아픔은 나를 깨어있게 해주는 각성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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