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치유의 방 “Osho Rajneesh Meditation Center”에서의 2시간은 찰나의 순간처럼 흘러갔다. 땅 속 깊은 곳으로 층층이 이어진 방들 맨 아래에 놓인 방에 이르면 지상의 빛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자기 몸뚱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차 보이지 않는 절대적 어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심장소리만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공포스런 적막 속에서 박승모가 발견한 것은 삶과 죽음, 공간과 시간, 나와 타자와의 경계를 넘어선 자기 자신이었다.

박승모는 90년대 중반 남들이 다 가고자 했던 영국이 아닌 인도로 향했다. 그리고 5년여의 시간을 명상과 수행으로 보냈다. 그 곳에서의 체험은 그의 예술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예술의 절대적 가치와 미(美)의 완성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 것인가를 목격한 순간이었고, 자아의 실체와 직접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박승모는 많은 걸 얻었다. 그런데 그의 명상은 동심원을 그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면에서 원이란 형상은 특별하다. 일종의 만다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하는 철학적인 형상이다. 그리고 이는 마음 속 의식의 흐름을 개념적으로 시각화하는 키워드가 된다. 일종의 시간의 수레바퀴처럼 영원히 회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원”은 작가의 공간과 시간개념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단어다. 이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 꿈과 현실의 경계, 삶과 죽음에 대한 경계 자체가 회전하는 바퀴처럼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실재가 보이지 않고 그 껍질만 보일 경우, 진실은 보이지 않고 그 윤곽만 보일 경우 사람들은 이를 허상이라고 말한다. 박승모는 허상(Illusion)을 고체화시켜 눈앞에 실재하게 만든다. 실재에 필적하는 존재론적 무게를 지닌 허상을 그려냈던 이전 알루미늄 껍질 작품과 많이 달라졌다. 허공에 떠 있는 이미지는 언제라도 사라질 신기루처럼 가볍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이전 작업보다 훨씬 가변적이고 불안정한 속성을 노출한다. 이는 의도적인 노출이다. 고체화된 이미지의 불안정성이 “원”으로 상징되어온 그의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에 작용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시각적인 환경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전시 제목 환(幻)을 시각적인 일루전만으로 읽어선 안된다. ‘다시 돌아온다.’는 회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환(還)이기도 하다. 이는 작품 속에 시간적 요소가 숨어 있음을 의미한다. 전작에 이어 이번 신작 시리즈 역시 얇은 선의 연속이 겹쳐지고, 교차하며 만들어 내는 허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알루미늄 와이어의 고정된 이미지와 다르게, 이번 작품의 허상은 동적인 요소를 어렵지 않게 획득하고 있다. 다가서면 사라지고 다시 거리를 두면 모습을 나타내는 허상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가까이 다가서며 발견하는 얇은 스테인레스 와이어의 집합이 실재인지, 아니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는 환영이 실재인지의 문제는 박승모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변화하는 순간이다. 이는 실재와 허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작품과 관객의 상호작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창조의 순간이기도 하다.

박승모는 꿈을 깨는 순간을 죽음이라고 정의한다. 수중에서 진행된 배우 곽지민의 몽환적인 연기는 죽음을 경계로 갈라선 꿈과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너는 생각했을 때 내가 죽어 있다고 슬퍼하겠지만, 내 시점에서는 네가 죽어있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설명이 배우와 작가, 작품과 관객 사이의 관계가 꿈과 현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박승모의 죽음은 어떤 것의 종말이며 동시에 어떤 것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곽지민의 몽환적 이미지는 중력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 흑백의 점과 선으로 흩어져 버리는 허무한 실체로 변해버린다. 이처럼 허상이 실체와 만나는 찰나에 일어나는 인식의 변화야말로 박승모가 만들어 내고 싶어했던 움직임이다. 그것은 부유하고, 가변적이고 불안정하고, 찰나적이다. 그래서 그의 허상은 독립적이지 못하고 항상 관객의 시점에 의존한다.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빈틈을 의도적으로 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박승모의 허상은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대형 (대표/H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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