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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으로 뜨개질을 하는 작가 - 서민정


서울 영등포의 집창촌을 전시장으로 옮겼다. 정확히 말하면 76%로 축소한 사이즈의 스티로폼 모형으로 전시장을 가득 채운 뒤 폭파시킨 순간을 담아낸 설치작품이다. 이렇게 탄생한 서민정의 <순간의 총체>는 한 지점에서 바라보는 시점이 아닌 걸어 들어가는 행동을 관객에게 요구한다. 관객은 반 강제적으로 집창촌의 미닫이 문을 통과해 이층으로 연결되는 부서진 작은 계단과 그 위로 보이는 사람머리하나 통과 못할 답답한 창문을 발견하게 된다. 언제 무너져 내리게 될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서민정의 하얀 구조물은 중력의 법칙마저 거스르며 관객의 시점을 교란시킨다. 한국에서 일본 그리고 다시 독일로, 동판화작업에서 설치미술작가로 변신을 거듭하며, 그녀가 극복하고 해체하고 무너뜨린 수많은 경계선들이 이 파괴된 설치작품의 잔해처럼 균열의 흔적을 곳곳에 노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민정의 설치작업에서 무엇이 작품이고 무엇이 평범한 오브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미술관 혹은 갤러리 등 미술제도권의 공간과 집창촌이라는 일상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이다. 그 경계를 어떤 방법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전시장에 놓여 있는 전시 안내 텍스트 정도의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전시장에 놓인 설치물이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화와 산업화에 대한 반항, 대한민국 성문화와 여성인권에 대한 고발, 사회적 마이너리티 보고서 정도로 오독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어진 대상을 탈문맥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오리지널 형상과 색상이 현실 공간에 대한 암시와 상징의 기제로 작동되어 자칫 해석의 각도를 좁힐 수 있기에, 76% 크기로 축소하고 하얀색으로 공간을 표백시킨 서민정의 선택은 정당성을 획득한다. 집창촌의 붉은 조명 대신 밝은 형광등으로 구석구석까지 숨김없이 설치물의 맨살을 노출시킨 발상 역시 집창촌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관객들이 쓰고 있던 "집창촌"에 대한 색안경을 없애 버린 것이다.

집창촌과 갤러리, 파괴와 창조, 안과 밖이란 이항대립은 서로 대척점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그 사이의 경계는 매우 깊고 넓어 보인다. 그런데 서민정은 이 경계라는 것이 사회, 역사,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일종의 허상으로 매우 유동적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특정 이미지가 하나의 미디엄에서 또 다른 미디엄으로 끊임없이 순환하고, 하나의 문맥에서 또 다른 문맥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새로운 의미를 확대 재생산해내고 있는 시스템 속에서 중립성을 가지고 자기해석 하기를 촉구한다. 즉 시스템이 균열을 노출하는 짧은 시간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 그래서 폭발의 순간을 정지화면으로 잡아낸 듯한 작품 <순간의 총체>가 평면 사진이나 느린 화면의 영상 작업이 아닌 실제 공간 속에 얼어붙은 듯한 설치작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시각적인 대상으로 화면 속에 이미지로 존재해서는 관객의 시간 개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정은 시간이 멈춰버린 폭발의 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다양한 각도에서 그 순간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집창촌"이란 관념은 무의미해진다. 대신 불가능한 사건의 순간과 불가능한 사건의 각도를 자기 자신만의 호흡과 속도를 가지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시스템이란 문맥에 갇혀 있던 관객의 위치가 그 시스템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눈을 획득하며 역전되는 순간이다. 사회적 약속, 규정, 제도 즉 온갖 경계선들이 만들어 놓은 의미망이라는 것이 경제논리와 억압의 기제로 악용되며 자칫 그 본래의 의미를 잃고 폭력성으로 변질되는 현실을 해체 재구성하는 논리가 서민정의 <순간의 총체>인 것이다.
미술의 역사는 누가 얼마나 창의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역사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넘나드는 도발을 감행하는가를 주목해 왔다. 2010년 겨울 어느새벽. 서민정의 포트폴리오를 처음 받아 들고 반세기 전 활약했던 마르셀 브루드테어스의 아우라가 떠올랐다. 1968년 초현실주의 작가 마르셀 브루드테어스는 <Musée d'Art Moderne, Département des Aigles 현대미술관, 독수리 디파트먼트>라는 가상의 미술관을 만들고 그림과 조각, 박제, 심지어 만화까지 독수리 수백여 마리를 전시하며 작품 옆에 "이것은 미술 작품이 아니다."라는 표식까지 붙여 놓는다. 미술관과 그 안에 보존되어 있는 작품들이 어쩌면 역사와 시대가 만들어낸 한갓 제도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전시 <현대미술관, 독수리 디파트먼트>는 꽤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1970년 뒤셀도르프 쿤스트할레와 1972년 카셀 도큐멘타 V를 포함해 11번의 전시로 만들어진다.

설치미술이란 것의 속성상 난잡한 잡동사니 더미 혹은 편집증적인 수집물 더미로 비춰지기 쉽다. 논리적으로 경계를 해체하고 이를 다시 재구성해 별도의 스토리로 그것도 반전 스토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 많은 장치들이 필요하다. 서민정의 설치작품 시리즈는 마치 독일어로 쓰여진 철학책에 등장하는 긴 문장처럼 일단 하나의 실마리를 읽어내면 그 다음으로 또 그 다음으로 해석의 층위를 확장시키는 명쾌한 논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기계적인, 획일적인, 건조한 해석으로 흘러갈 수 있는 위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회화적인 감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드로잉작업을 회화작품처럼 붓으로 그려내며 형태가 아닌 그 장면의 감성적인 색상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자로 일일이 실측하며, 면도날로 자른듯한 날카로움으로 완성된 <순간의 총체>가 인간에 대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에 대한 따뜻함을 숨길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작가를 보고 있노라면 얇고 날카롭고 차갑기까지 한 경계선을 가지고 따뜻한 목도리를 만들겠다고 뜨개질을 시작하는 순진한 모습이 떠오른다. 작가는 이 무모할 만큼 거대한 설치작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대 형 (대표, H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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