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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 개인전 The Silver Age
아트플레이스 큐레이터 이은

최원정 작가가 초기 작품부터 일관성 있게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그것의 진화에 관한 것이다. 정체성이란 남과 나를 구분짓는 본질적인 것이지만 끊임없이 유동流動하는 규명할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완전히 다른 문화권인 미국에서 수년간 살고 있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는 작가의 정체성이 양쪽 다 속할 수 있는, 혹은 양쪽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을 직접 경험하며 그 중간적 상태를 탐구 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흔히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 소속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가나 가족, 또는 종교 같은 것들을 필요로 하며 그런것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 내리곤 한다. 그러나 그런 소속감들은 동시에 구속이 되기도 하여 특정 관습과 전통, 윤리적 잣대가 구성원들에게 기대되어진다. 그래서 반대로 소속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롭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The Silver Age'란 이번 전시에서 최원정 작가가 내어놓은 작품에서 그런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Borderless'라는 제목을 붙인 그녀의 은신발은 마치 중세시대 갑옷처럼 발을 튼튼하게 지켜주어 그 신발만 신으면 어디든 마음껏 갈수 있을 것만 같다. 또 'Fearless'라는 물고기를 지켜주는 갑옷-그 물고기는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은 지난 10년 이상 작가의 전시에 등장하고 있다. 작가가 수집해서 작품에 사용하고 있는 은식기들은 미국이나 유럽식의 것으로 수십년 혹은 수백년 된 것들이다. 이를 자르고 다시 이어 붙여 만든 것은 미국식도, 한국식도 아닌 작가 자신만의 것이다. 그래서 'third culture kid'라는 작품이 탄생한다. 서양의전통적인 은식기 문양의 한가운데 우뚝 서서 내려다 보듯 하고 있는 third culture kid는 한국과 미국의 두가지 문화를 동시에 접하며 살고 있지만 자신의 뿌리를 어느 한 나라로 특정 지을 수 없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방인으로서의 자유로움과 소외감 사이에서 어떤 답을 찾았을까? 작가의 최근작을 보면 자신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몇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조상들이 이주해 온 경로를 밝혀내고 있다. 결국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유영하는 자아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예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수만년에 걸친 여정들은 지층처럼 쌓이고 굳어져 우리의 유전자 안에 잠재하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가 되어가는가'는 아무도 피할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불확실함 속에서 어떤 답을 구하고 있지 않을까?

최원정의 오딧세이: 혼종성과 이질성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2018-2019 뉴욕대 방문연구교수)

2017년 최원정 작가가 제작한 라는 작품은 과거에 사람들이 사용했던 앤틱 은그릇을 잘라서 이어붙인 메탈 콜라주 방식으로 제작된 신발이다. 이 신발의 제목은 “경계가 없는”으로 번역하거나 또 경계를 넘어서는 개념으로도 수용할 수도 있다. 선을 긋는 행위와 함께 선을 무너뜨리려는 행위, 혹은 경계를 만들거나 경계를 넘어서는 양가적 행위는 인간의 욕망 속에 항상 존재해왔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제목인 '경계'라는 말은 여러 층위를 지닌 단어이다. 최원정의 작품에서 경계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젠더, 인종 등 사이의 경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경계는 역사적 층위를 가지는 시간성을 뜻하면서도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로서 이방인으로, 노마드로, 그리고 내부인이자 외부인으로 이질적, 혹은 동시대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의미를 띤다. 최원정 작가는 본래 한국에서 조소를 공부하고 2002년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의 초기 작업은 선적인 드로잉과 그림자를 이용한 키네틱한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가벼우면서도 그림자로 인해서 무게감이 있어 보이는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이중성과 양가성은 작가의 초기 작업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보이는 요소이다. 그는 순수하게 사용되는 조각의 재료성, 매체성보다는 조각적 재료를 이용한 이미지의 생성과 변주, 변형 등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미국에 왔을 때부터 2010년까지의 작업들은 주로 글루건과 플라스틱을 이용한 작업들이 주를 이룬다. 200마리의 이미지들은 블룸버그 건물에 설치되면서 뉴욕 화단에서 떠오르는 젊은 작가로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초기 작업들의 특징은 물고기의 뼈를 키네틱하게 공간 속에 설치한 작업들로, 뼈의 투명성과 견고함, 빛과 그림자가 서로 연결되어 마치 무시간 속에서 유영하는 이미지로 보인다. 아니면, 화석이 된 물고기를 공간 속에 소환시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가가 왜 이렇게 독특한 공간 설치를 이용했으며, 물고기라는 모티프와 뼈를 이용한 작업을 선택했는지는 최원정 스스로의 경험에 기반한다. 그는 뉴욕에 왔을 때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 속에 노출되고 수많은 타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타자와 대면하면서 자아를 인식하게 되고, 나의 경계를 인식하면서 타자의 경계를 확인하는 것처럼 그는 뉴욕에서 문화적, 언어적 경험, 그리고 쉽게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경험하게 된다. 최원정에 의하면, 이 시기에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이주 작가들은 디아스포라적이고 노마드적인 삶의 변화에 대해 타자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작업들을 많이 다루게 된다. 역사적으로 과거를 반추하기 보다는 가장 현재적이고 동시대적인 지금의 장소와 공간, 시간을 다루는 경향이 많은데, 최원정은 오히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해서 역사적이고, 세대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끌어내는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초기 작업부터 2018년 11월 서울에서 전시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이다.
인간의 문화가 기록으로 남겨지기 이전, 공룡의 뼈나 화석 등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과거 역사를 유추한다. 인간의 뼈는 여러 세대가 걸쳐져 있으며, 진화와 퇴화를 거듭하면서 인간의 문명을 이뤄왔다. 이러한 뼈는 최원정에서 여러 세대와 시대를 내포하는 상징적 의미를 띤다. 특히, 작가가 스스로의 초상화로 제작한 '하이브리드 피시'는 타문화 속에서 작업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I have a butterfly in my stomach'은 영어로는 '긴장하다'를 뜻하지만 최원정은 리터럴하게 스스로를 물고기로 상징화하고 배 안에 '나비'를 설치하였다. 무한한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하이브리드 피시'들은 문화와 문화가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일종의 언어의 유희이자, 문화번역의 관점에서 언어를 이미지로 구체화한 경우이다. 컬러 새도우를 만들어서 보라색 등이 만들어지는 등, 언어와 이미지, 문화가 서로 만나고 섞이면서 발견할 수 있는 익숙함과 언캐니한 감정이 이곳에 존재한다. 물고기 안은 집같이 편안하지만 또 익숙하지 않는 낯선 공간이다. 작가는 뉴욕기반으로 활동하다 2010년에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시에 참여하게 되는데, 당시 작업들은 점차 빙하기에 온 듯이 하이브리드 피시가 얼어가는 느낌을 반영한다. 이것은 당시 작가가 느꼈던 어떤 심리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뉴욕을 떠나 다른 도시로 이주해가면서 스스로를 통해 느끼게 되는 거리감, 또 다른 긴장감 등이 '하이브리드한' 물고기가 얼어가는 느낌으로 표현되었다. 작가의 페르소나를 상징하는 물고기와 같이 특정 이미지로 형상화된 이미지의 '혼종성'은 한국과 미국 문화라는 두 개의 세계를 경험한 그의 경험과 여정,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체험하는 또 다른 여성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물고기는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이중성을 지닌다. 또한 최원정의 작업에서 마이크로한 세계를 다룬 작품들은 현미경으로 보면 세포처럼 미세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 자체로 본다면 그것은 대지나 대륙 등 큰 경계로 보이기도 한다. 미시와 거시, 마이크로와 매크로, 미니멀과 맥시멀, 이러한 두 개의 상반된 요소들은 그의 작업에서 공존하고 충돌하며 이중적 시각과 관점을 구축한다.
뉴욕을 베이스로 작업했던 최원정은 공간을 장악하는 설치적 특징 때문에, 기업과의 협업 또한 많았다. 2011년 스와브로스키 측에서 크리스탈을 작가에게 제공해 제작했던 프로젝트는, 재료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제공했다. 를 통해 보여주듯이 크리스탈이 서서히 녹아가면서 새로운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재료의 연금술적 변화를 통해 그의 심리적 상태를 전달하는 듯하다. 엔트로피한 상태에서 액체로 녹아드는 느낌을 주는 이미지는 비정형으로 모든 것이 무의 상태로 돌아가 다시 이미지가 되기를 기다리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최원정에게 또 다른 변화는 2013년 버지니아로 이사를 가면서 미국 문화 내에서도 작가가 거주했던 뉴욕이나 필라델피아와는 다른 곳으로의 이동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이 시기부터 실버(은)를 이용한 금속재료에 매료되게 되는데, 특히 은식기와 같은 전통적으로 서구에서 사용되었던 재료를 이용하였다. 은 접시 등을 모아서 (때로는 이를 기부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은을 자르고 붙이면서 새로운 형상을 콜라주처럼 만들어나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금속작업을 근 4년 동안 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등장한 작업들이 '물고기를 위한 갑옷'이라는 범주의 작업으로 작품명은 라고 불린다. 갑옷은 작가를 보호하는 장치이면서 비정형의 흔적과 퇴화의 과정을 보여주었던 전작과 달리, 스스로 외부로 나오고자 했던 강한 심리적 열망을 반영한 작품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유리 안에 들어 있어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어쩌면 이러한 노동집약적인 콜로주 작업은 작가 스스로 심리적 전이공간으로, 서울-뉴욕-필라델피아-버지니아로 이어진 긴 삶의 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는 한번에 쉽게 만들어지는 작품이 아니라,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을 많이 제작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은그릇' 등은 서구 문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한국인인 작가가 이를 수용하고 해체해 새로운 해석을 반영한 이미지로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4년 동안 작업했던 작품들이 뉴욕의 웨이브 힐 맨션(Waver Hill Mansion)에서 전시되면서 그는 2002년부터 10년 이상 작업한 '피시' 프로젝트는 긴 여정 끝에 새로운 작품으로 이어지게 된다.
지금까지의 프로젝트들이 '만들기'라는 행위를 통해 최원정 작가가 서로 다른 속성들을 연결시키고 대척시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갔다면, 최근에 시작한 작품들은 훨씬 더 개념적이다. 그의 작업은 초기에도 늘 개념적 여정이 반영이 되었고 이러한 미시적, 유기적 세계들이 작가의 작품세계와도 연관이 되어 있었다. 즉, '만들다'라는 물리적 행위는 작가가 구축한 개념적 세계와 항상 맞닿아 있었고 두 세계의 교감 또한 작품에서는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면, 은식기로 새로운 콜라주 작업을 만들 때에도 은이 가진 상징성을 언급한다. 근대기에 들어오면서 대량생산된 그릇들이나 재료들이 과거의 것을 대체하면서 은은 부의 상징이 아니라, 손이 많이 가고 쓸모없는 전통의 상징으로 비추어졌다. 어떤 은식기는 특별한 사람과 특별한 계기에 만들어진 내용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는 이러한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을 중요한 예술적 참조로 이용한다. 즉, 은은 조각적 재료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은을 통해 그는 여러 시대와 세대를 통해 전달되는 이야기를 끌어들인다. 작가가 '하이브리드 피시'를 통해 여러 층위의 문화, 상이한 세대, 중첩된 시간성의 결정체로 다루고 싶었던 것과 같다.
마지막 두 프로젝트는 연속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나, 작가의 개념적 리서치와 프로젝트와 연관되어 있다. 한 작품은 그가 2010년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면서 보았던 신문에서 발견한 스토리이다. 모든 것이 온라인화 되어 버린 지금과 달리, 7-8년 전만 해도 인터넷 매체를 많이 다루지 않았던 50-60대들은 지역신문에 데이트 광고를 실었다. 여기에는 사람의 이름은 배제되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사람을 찾는지 형용사나 명사를 중심으로 기술되는데, 작가는 이 개념들을 추려내어 특정 타입, 젠더, 에스닉 그룹에 바탕을 둔 자신이 선입견 혹은 스테레오타입을 상상해 가상 초상화/몽타주를 제작한다. 상상에 의한 몽타주 이므로 작가는 눈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개인과 사회, 사적/공적인 관계를 담은 사회적 드로잉을 제작했다. 때로는 그 스스로 광고 속의 사람들을 중매쟁이처럼 연결시켜 주는 과정 또한 다루게 되는데, 이러한 신문에 게재된 정보는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특정 인종과 에스닉 그룹에 대해 어떤 선입견과 상상이 작동하는지 확연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최원정의 가장 최근 작업은 리서치 베이스의 프로젝트로 DNA테스트에 기반한 것이다. 작가 스스로 DNA검사를 하는데 인류의 진화는 결국 이주에 기반을 하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이주, 이동을 기반으로 그는 특정 타입을 만들어 현재 5세대까지 계보를 만들어 가면서 소위 족보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우리가 족보라고 하면 하나의 계보학으로, 이러한 계보학은 진화론뿐 아니라 우수한 종이 있다는 근대적 신념 하에서 비서구적 인종들은 억압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이를 오히려 해체하면서, 3D 로 모델을 만들어 다산의 상징인 빌렌도르프뿐 아니라 도구의 인간, 유희의 인간 등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인물군들이 들어간다. 2002년부터 시작된 최원정의 여정은 시대와 세대, 상이한 문화, 언어 등을 경험하면서 가장 개인적으로 체험한 요소들이 작가의 주제로 등장한다. 또한 그의 작업에서 수공적인 것, 금속과 유리를 통해 발견되는 연금술적인 것, 상징적 의미를 담은 개념적인 언어들은 이러한 여정에서 중요한 작품제작 과정이자 화두로 등장한다. 그가 제작한 이미지들이 형상성이 있으면서도 추상적이듯이, 아름다우면서도 그로테스트하다. 이것들은 작가가 여러 장소와 공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적응하고 안정을 찾아나가는 긴 여정을 이미지로 기록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두려움없이(Fearless), 아무 생각없이(Mindless), 숨차게(Breathless) 등이라는 작품 제목을 통해 전달되지만, 때때로 그것은 반대의 의미로 두려움과 여러 갈래의 생각으로 숨차게 달려온 긴 여정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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