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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풍요와 빈곤 속 두려움을 말하다.


욕망, 상실의 시간, 클리셰와 언캐니의 사이
매일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 타인의 상실감을 구체적으로 접하는 건 이제 별일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다. 오늘에 이르러 인간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예술적 표현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그것이 색다른 자극적 요소로 제 포장 된 것이 아니라면 그저 그런 클리셰 (Cliché')일 것이라는 선입견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무관심과는 다를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은 타인의 상실과 불행이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일어나서도 안 된다고 속삭인다. 그건 사실 막연한 두려움에 바탕을 둔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일 것이다. 세상의 풍요를 바라볼 뿐 빈곤은 외면하고 싶다. 결국 저 멀리로부터 들려오는 타인의 고민과 고난은 인생의 무대에서 실패한 조연들의 이야기일 뿐이며 나는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특별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주연이 아니며 대부분의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상실감에 이르는 시간은 별로 멀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제 갓4살된 아들이 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잠을 깊이 잘 수가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매운 생각들의 정체는 두려움과 고민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살아가는 많은 시간 속에서 아버지인 나의 역할에 대한 걱정, 그간 별로 조명 받지 못해온 아티스트로서의 내 삶이 이 아이에게 미칠 어떤 영향에 대한 두려움은 나를 부자유케 하며 조급하게 만들었다. 듣기에 따라서 누구에겐 당연하고 사소한 일상이 또 누구에겐 너무나 낯설기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또 예전엔 무관심하게 들어주던 타인의 고민이 오늘의 나에게 직면한 현실이 되기도 한다. 그간의 어떤 일정한 궤도를 그리던 내 삶의 궤적으로부터 벗어난듯한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고, 매뉴얼엔 없는 방식이 요구되어지기도 한다. 마치 그것이 언캐니 (The Uncanny)의 경험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과는 다른 상황은 묘한 이질감의 괴리를 경험하게 하며 진부함과 새로움 혹은 익숙함과 낯섦의 가치가 그저 상대적일 뿐이라는 생각에 닿게 한다. 삶은 그런 가운데 두려움과 상실을 가르치고 그래도 또 뭔가를 기대하고 꿈틀댈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설정, 재설정 되는 삶, 설계도
삶이나 미술 작업이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기부여와 그에 따른 성취를 위한 행동들은 어떤 형식과 구조를 만들고 나름의 규칙을 설정하게 했으며 해체 혹은 리모델링은 방법의 후퇴 혹은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삶은 컨스트럭션과 디컨스트럭션을 반복하여 어떤 지점에서는 그 과정의 의미가 전복되거나 무의미하게 되는 것임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저것을 허물어야 하는데 결국 부수는 과정도 만드는 과정도 상호 어떤 경계가 모호한 일련의 행위의 수평선상에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미술 작업의 과정 속에서 무엇을 표현하여 종결 시키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며 구성과 해체의 그 어디쯤에 잠시 멈추는 순간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011년 Construction & De-Construction 연작을 시작하며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 눈부신 창의적 혁신들이 더해질 때마다 동시에 지금까지 경이로운 업적으로 평가 받던 결과물들의 틀을 깨야 할 것이다. 그것을 파괴라고 하기보다는 기존 방식의 해체라거나 혁명적 변화의 모색이라는 무척 긍정적 명분을 앞세워 그 현상을 바라보려 한다. 그러므로 전혀 상반되는 방식의 행위가 어떤 지점에선 의미의 경계가 모호한 동일한 가치로 둔갑하는 것이다.
(2011년 그린포인트 새 작업실)
2011년 어느 무더운 여름 드디어 1년사이 7번째 작업실 이사를 했다. 뉴욕의 살인적인 작업실 렌트비 때문이라 하더라도 구역질 나게 더운 날씨에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북! 북! 찢어버린 두꺼운 박스 종이들이 이처럼 조형적으로 아름다운지 몰랐다.
나는 지금 부수고 있는 거야? 만들고 있는 거야?

치유, 어두움의 의미
내 미술 작업으로부터 드러나는 공통된 특징은 검고 어둡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어 반복 같은 동일한 의미 같지만 내 작업에서 어둠과 검은색의 의미는 구분되어 표현된다.
검은색은 먹구름처럼 확장되어 가는 현실적 욕망을 의미하지만 뒤틀어지고 불규칙하며 마구 뒤엉킨 형태는 일그러진 욕망, 상실감에 닿아있다. 사실 상실감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화려한 다색의 현실 세상으로부터 자라난다. 마치 알록달록한 풍선들 가득 담긴 먹물이 터져 흘러 나온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 욕망의 찌꺼기들은 질퍽거리는 검은색이다. 그러나 내 작업에서 어둠은 검은색과는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어둠은 견고하게 짜인 어떤 틀로부터 혹은 어떤 자극으로부터 격리된 상태를 의미한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정교한 구조로부터 튀어나간 부속처럼 무력화 되는 순간 낯선 환경에 대한 강한 저항과 두려움이 밀려오지만 그 부적응의 시간이 지나면 세상의 편리와 맞바꾼 평안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불안하게 지탱해온 규칙과 틀, 수많은 구조물의 하단부로부터 벗어난 느낌을 지향하며 어둠은 내 작업 속에서 그렇게 치유의 기능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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