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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의 어떤 망루

식민주의와 근대화. 역사와 시점이 비슷함에도 서울보다 오래된 건물을 잘 보존하고 있는 타이페이 도시풍경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서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70년 앙리 르페브르(Henry Lefebvre)가 “완전히 도시화된 사회”를 예언했을 때, 그것은 일종의 가상의 개념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의 도시화 가설은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 속도라면 머지않아 지구 면적의 대부분이 도시화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문제는 그와 함께 사라질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바라보면서도 윤리적 딜레마를 느끼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효율성이란 단선적 경제 논리가 만들어낸 근대화의 공간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왜곡된 욕망의 공간을 낳을 수 있기에 도시공간 이면의 본질을 읽어내려는 진지한 인문학적 접근이 시급하다.

탱크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포크레인, 시멘트가 발라진 스티로폼 파편들, 고층건물을 둘러싼 비계 구조물까지 김지은의 작품은 시트지, 스티로폼, 오뎅꼬치 등 싸구려 광고재료와 버려진 오브제들로 구성된다. 그녀가 바라본 한국의 근대화와 도시화의 과정은 전쟁터에 설치된 간이 천막과 위장막처럼 한시적이고 불안한 공간이다. 그래서 이들 재료가 부여하는 리얼리티는 이미지 자체만큼이나 강렬한 상징체계가 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자주 만들고, 팔고, 교체해 버리는 획일적인 서울의 아파트 풍경과 그것을 부추기는 정부정책이 만들어낸 서울의 근대화 공간 속에서 문화와 역사의 당연한 결핍을 목격한다. 효율성의 철학이 공간의 획일적인 동질화를 가져왔다. 사물의 기능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미지, 즉 기호를 소비할 것이란 장 보드리야르의 예측이 엉뚱하게도 상업 광고의 논리와 정부정책의 잘못된 짝짓기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 같은 부조리의 현장을 김지은이 놓칠 리 없다. 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의 문화를 사전학습하고야 마는 강박증은 국회도서관을 뒤져서 한국전쟁의 이미지를 수집하게 만들었고, 각종 통계자료를 열람하게 만들었다. 통계자료가 사실들을 나열했을 뿐인데, 익숙한 지명들이 얼마나 파괴되었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읽어내려가며, 김지은은 실제로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은 보이지도 않지만, 땅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의 상흔들은 분명 존재한다. 서울의 경쟁적인 도시개발은 어쩌면 전쟁과 근대화 과정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해 작가는 “마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성형수술 환자가 나중에는 회복하고 나서도 화장을 진하게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김지은의 도시 공간이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나 물리학에서 의미하는 정제된 추상적인 정의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다. 그녀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공간 위에 세워져 있다. 이는 서로 파편화된 공간들의 기계적인 혹은 조형적인 조합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성질의 공간을 의미한다. 대신 중층적이고, 상호침투적이며, 다층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상호작용으로 바라봐야 한다. 심지어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이견들이 충돌하는 사건의 현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허물어질 줄 알면서도 높이 쌓아 올라가야 하는 김지은의 망루는 도시화의 공간과 그 안에 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볼까? 먼저 이들 재료를 유심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자기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희생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 곧 버려진다는 점이다. 아파트를 광고하기 위해 동원된 시트지 광고판, 값비싼 전자제품이 안전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보호막을 제공했던 스티로폼, 건물을 높이 세울 때 필요한 비계 구조물까지 이들은 목적이 끝나는 동시에 쓰레기로 버려지고, 잊혀지고, 철거된다. 이들 재료의 운명 속에서 도시화 과정의 단면과 그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G 20 정상회담의 의장국까지 수행한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지 서울. 그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더욱이 이 같은 번영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간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찾기란 더욱 어렵다. 김지은의 <어떤 망루>가 무엇을 내려다 보고 있는지 보다 명확해졌다.

이대형 (대표, H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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