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갤러리 압생트에서는 2015년 5월 13일(수)부터 6월 30일(화) 까지 갤러리 압생트의 드로잉 기획전 <Root of Imagination>의 세 번째 후속 전시로 <미-완의 간극 Completion in Incompletion>을 개최합니다. 드로잉에 대한 관심과 탐구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본 전시는 설치 및 미디어 작가로써의 행보를 달리해온 권자연, 이배경, 이예승, 홍범의 드로잉을 통해 각자의 고유한 작업 방식을 보여주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작업의 결과물이 아닌 과정을 부각시킴으로써 작품과 밀접한 작업의 원형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 입니다.

전시서문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위해 생산하는 수많은 그리기(drawing) 작업은 하나의 결과물로 완성되어 전시될 수도 있고, 미완성으로 가공되지 않은 채 영원히 작업실 한편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 결과물로 도출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작가가 만족하는 만큼 특정 작품의 완성도에 드로잉이 어느 정도 기여했는가’, 내지는 ‘작가가 의도했던 그리기 작업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는가’ 이것이 드로잉의 막중한 소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드로잉은 완성과 미완성의 간극 어느 지점에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완의 간극 Completion in Incompletion>에서 선보이는 네 명의 설치 및 미디어 작가들의 드로잉은 미완결과 완결의 틈새를 의도적으로 노출한다. 드로잉 자체가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의 수단이기에 작가의 개별성에 따라 드로잉의 속성도 마땅히 서로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달랑 연필 한 자루와 종이를 가지고 그려낸 가장 정직하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손이 아닌 컴퓨터의 기술을 빌려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꿈꾸는 것들을 입력한 디지털 방식일 테다. 또한 기존 작품에 대한 것이냐 현재 진행 중인 새로운 작업에 대한 것이냐 등으로 다양하게 나뉜다. 이런 정황들 속에서 드로잉을 한 가지로 규정할 수는 없으나, 다음의 이야기들은 작가마다 별개의 귀결을 지닌 드로잉에 대한 서술로 볼 수 있겠다.

이예승은 그간 전시장 전체의 공간을 하나로 아우르는 큰 규모의 미디어 설치물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가 선보이는 드로잉은 매체적인 면에서 기존의 작업과 대척점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설치작가의 드로잉은 작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업을 완성하기 위한 끊임없는 내용 정리와 수치 계산이 고스란히 드러난 아이디어 스케치들은 뉴런처럼 서로 얼기설기 얽혀있다. 공학적인 실험 데이터 같은 드로잉들은 이예승의 신작에 대한 퍼즐이 되어줄 것이다.

2차원 스케치를 통해 설치 미디어 작품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 이예승과는 반대로, 미디어 작가 이배경은 가장 그 다운 드로잉을 선보인다. <The Perfect Society>는 다양한 상관관계와 변수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하는 유동적인 사회시스템 속에서 “완벽한 사회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인터랙티브 영상 작품이다. 컴퓨터와 수식,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진 이배경의 드로잉은 관람객의 참여 행위에 따라 달라진다. 작가가 설정하고 제시하는 물음은 관람객 저마다의 답으로 이어지게 된다.

주로 결과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는 현장 드로잉 작업으로 알려진 권자연은 아날로그적 드로잉의 기본적 과정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는 작가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의미를 찾고 부여하는 작가만의 독창적 작업 과정 속에서 일부 드로잉은 결과물로 실현되도록 취해진다. 나머지는 또 다른 작업의 가능성이 내재된 드로잉으로 남겨진다. 그래서인지 시각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드로잉을 먼저 접하고 결과물을 볼 때 낯설지 않고, 오히려 서로 닮아 있다고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질 드로잉은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것들이며, 작가가 개인적으로 최종 결과물보다 더 애착을 느낀다고 할 수 있는 미완성의 조각들로서 재조명될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전시 공간에서 몇몇 통합된 형태의 덩어리로 보여지며 완성과 미완성의 간극을 포착하게 된다.

권자연의 드로잉이 예비적인 습작이었다면, 홍범의 드로잉은 좀 더 정제된 형태를 띠고 있다. 최근 십 년간 진행해온 그의 스무 권 남짓의 드로잉 노트에는 작업의 모태가 되었던 의식의 단편이 서로 다른 층위의 시공간에 켜켜이 쌓여 있으며, 이는 홍범의 치열한 작업 태도를 자연스레 드러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드로잉은 "독립적인 작업의 바탕으로서, 또한 하나의 독립적인 작업의 실험으로" 여겨진다. 작가 개인이 경험한 공간에 대한 기억이 생성되었다가 소멸되고, 공간 자체가 특정 구조로 대입되어 의인화되거나, 현실과 기억 속의 공간이 중첩되어 공명을 울리기도 한다. 그의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의식의 확장만큼 드로잉도 진화해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어딘가의 미-완의 간극에 비정형의 드로잉이 자유롭게 존재한다. 형태도, 형식도 정해진 것이 없다. 하나의 기준으로 규정될 수 없고, 작가와 그의 행위에 따라 드로잉의 의미와 역할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수많은 습작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작품과 가장 밀접한 설명 수단이 될 수도 있으며, 드로잉 자체가 작품으로서의 독립성을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드로잉을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분집합으로 보았을 때, 비정형에서 정형으로 나아가는 간극에서 다양한 형태와 형식이 발현된다. 그 과정에서 드로잉들간의, 드로잉과 작품간의 긴밀한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권보영, 선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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